다양한 방법의 장르적 학습

다양한 방법의 장르적 학습

일상적 사건들을 바탕으로 한 코미디로서 이 두 콘텐츠는 시트콤 적 성격을 지닌다. 스티브 닐과 프랑크 푸르니크는 코미디가 잠재적으로 전복 성을 지닌 장르로 이해되지만 동시에 그 전복 성은 장르 적 관습으로 축소된다고 주장한다. 따라서, 시트콤에서 유사한 상황과 캐릭터 특징이 반복되는 것은 그 상황이나 캐릭터가 지닌 전복 성이 웃음을 통해 위협적이지 않고 받아 들여질 만한 것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. <편의점 고인물>과 <1분 뮤지컬>은 분명 20 대가 겪는 사회적 현실에 대한 풍자와 비판을 내포하고 있다. 하지만, 닐과 푸르니크가 지적한 대로, 1분 시트콤은 반복 적 상황과 웃음 속에서 풍자와 비판을 망각하게 할 수 있다. 현대사회를 삶이 구경거리가 되고 이미지에 의한 사회적 관계의 매개 되는 스펙 타클의 사회라고 비판한 기 드보르는 자연의 “순환 적 시간은, 실제로 체험 되는, 부동 적인 환상의 시간이었던 반면, 스펙타클 적 시간은, 환상 속에서 체험 되는, 자기 변화하는 현실의 시간”이라고 말한다. 반복되는 1분 코미디는 여러 상황에 대해 비판하는 자신의 현전 감을 웃음을 통해 경험하면서 동시에 그 비판을 다음 콘텐츠의 실행이나 같은 콘텐츠의 반복 실행하면서 스펙타클의 시간으로 바꾼다. 그리고, 이 반복되는 1분의 스펙타클은, 그의 말처럼, “고립된 일상적 삶의 이런 개별적 경험은 언어도 없고, 개념도 없으며, 어느 곳에서도 기록된 적이 없는 그 자체의 과거에 대한 비판적 접근도 없는 채로 남아있다. 그것은 소통 되지 않는다. 그것은 이해되지 않으며 기억할만하지 않은 것의 허위 적인 스펙타클 적 기억을 위해 망각”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. 1분 웃음의 시간성은 앞서 설명한 깊이 감을 약화 시키는 중첩 이미지와 만난다. <편의점 고인물>에서 깊이 감이 약화된 채 대부분 다른 인물들과 한 프레임에 공존하지 않는 인물들은 고립되어 보이고, <1분 뮤지컬>의 노래는 독백처럼 들린다. 이는 프레드릭 제임슨이 말한 후기 자본주의 사회 문화 논리로서 깊이 없음(depthlessness)으로 이해할 수 있다. 그에 따르면, 고흐의 그림 <신발a pair of boots>(1887)에서 느껴지는 깊이 감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신발 주인의 노동에 대해 생각하게 하지만 앤디 워홀의 그림 <다이아몬드 가루 신발diamond dust shoes>(1980)은 재현의 대상이 아닌 그것이 재현된 표면을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. 이러한 깊이 없음은 피상 성 혹은 이데올로기 적, 해석학 적, 정신 분석학 적, 실존 주의 적, 기호학 적 깊이의 상실로 해석할 수 있다. 하지만, 티모시 베르묄렌(Timotheus Vermeulen)은 이 깊이 없음은 주디스 버틀러가 말한 수행 성을 통해 깊이를 재평가하게 하는 새로운 깊이 감이라고 주장한다. 그는 이탈리아 소설가 알레산드로 바리코(Alessandro Baricco)의 서핑과 다이빙 논의를 바탕으로 깊이 없음이 물 속에 빠지지 않고 계속 움직이며 물결의 궤적을 읽는, 다른 방식의 참여(engagement)를 요청한다고 말한다. 즉, 잠수부들이 깊은 물 속에서 의미의 조각들을 찾아낸다면, 서퍼 들은 표면을 구성하는 물결의 흐름에서 의미를 읽어낸다는 것이다. 위의 1분 콘텐츠들은 소셜 미디어 플랫폼들이 일상을 스펙 터클로 만들어 플랫폼 경제에 포섭하는 하나의 형식이다. 저 화질의 일상 이미지들은 상품이 되지 않는. 되지 못하는 이미지들에서 다시금 새로운 유통 경로를 통해 이미지의 경제로 편입된다. 숏 폼 드라마들의 이미지들은 한편으로 이미지의 순환 속도를 높여 경제적 가치를 발생 시키고 있지만 동시에 그 자체로 혁명적 상황이 사라진 세계를 표상 하기도 한다. 기 드보르의 말처럼, 이 표상 들은 “스펙 타클의 진면목에 도달하는 비판은, 스펙 타클이 삶에 대한 시각적 부정이자 삶에 대한 부정의 가시화임을 폭로”할 잠재 성을 지닐 수 있다. 1분 코미디의 사례처럼, 숏 폼의 깊이 없음은 동시대 인지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이를 망각하게 하는 수행의 현재 성을 가속화한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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